| 앨런 앤드류
앨런 앤드류는 부잣집 아가씨이다. 약 21년 동안 해달라고 하는 모든 것은 단 한마디로 이룰 수 있는 재력을 지녔으며, 실재로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 이는 후에 피터가 하는 말에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날 싫어해요, 아뇨, 그는 내 모두를 경멸해요. 그는 내가 응석받이에 제멋대로라고 해요. 아빠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버릇없는 건 아빠 탓이래요. 아빠가 오냐 오냐 키워서 그렇대요.” 이 한마디에서 앨런에 대한 피터의 생각, 피터에 대한 앨런의 생각 그리고 앨런과 피터에 대한 앨런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생각은 피터가 앨런을 사랑하지만 같이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추도록 만든다는 것이고, 두 번째 생각은 자신의 존재를 흔드는 피터에게 반항하면서도 따라가겠다는 것이며 그리고 세 번째 생각은 둘은 사랑하는 사이이며 꽤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영화의 전반부에서 진행된 피터와 앨런의 관계는 앨런의 아버지를 만족하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작용하며, 이는 위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피터와 앨런의 아버지가 앨런에게 바라는 상이 비슷한데 비해, 앨런의 아버지는 앨런을 변화 시킬 수 없지만 피터는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차이이다. 버스 뒷 차석에 같이 앉는 것, 같은 방에 자는 것 그리고 당근을 먹는 것 등 많은 부분에서 앨런은 피터의 의견을 따른다. 처음부터 순순히 따르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앨런은 ‘피터의 말은 전부 옳다.’는 믿음에 따라 자신의 사상에 맞지 않음에도 피터를 따르게 된다. 이런 변화가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까?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앨런의 모습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지금 당장이야 피터의 모든 말을 따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터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서 생기는 일이 그러하다. 피터의 말에 따라 그에게 맞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앨런 그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느낌을 살리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쉽게 말하면, 앨런의 독자성을 상실하게 되어 피터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부른다. 우리에게 생소한 행동을 하는 앨런을 낯익은 행동으로 고치는 피터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피터에 대한 몰입이 추종으로 바뀌는 단계에서 자신을 버리는 앨런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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