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al Experiment : 일단은 잡다한 글부터, 여유가 되면 실험적인 글을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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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lude <2004년> 
작성일시 : 2006/05/10 23:06 | 분류 : Novel | 태그 : ,

 

Prelude

2004년도 작품

맑고 향기롭게 부산모임 주관

제7회 전국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

소설 부문 장려 당선작

상금 100,000원

#1

무척 짙은 물안개 너머로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멜로디에 끌려 안을 쳐다봤다. 흐릿한 그 사람의 모습을 만지고 싶어 손을 내밀자 차가운 감각과 손가락 끝에 얇은 비닐 같은 막이 느껴졌다.


학교 음악실을 지나다 들었던 곡은 높고 부드러운 선율로 작은 파문을 그렸다, 거기에 물방울 하나가, 또 하나가 쌓일수록 손가락에 작은 구슬 같은 차가움이 부딪혔다.

“듣고 있었던 거냐?”

끝이 올라가는 묘한 억양, 음악실에서 나온 그는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말했다. 뺨이 붉게 달아올라 손을 대었더니 아찔한 열기가 느껴졌다.

“한번만 더 연주해줘.”

창문에 반사된 빛이 그의 반신을 밝게 빛냈다. 그리고 그의 가늘게 뜬 눈이 그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쳐다봤다. 커다랗고 검은 눈이 보였다.

“싫은데.”

그는 그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약간 옆으로 비켜서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을 벌리려는 순간 마음 속 잔잔한 파문이 갑자기 지면을 잃어버린듯 무수한 알갱이가 되어 끝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대신, 네가 연주하는 게 어때? 우리 밴드에 와. 키보드 가르쳐 주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복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루스’ 우리 밴드 이름이지. 알아서 찾아와. 그럼 이만.”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며칠 후 나는 그가 우리 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낙제생이라 부르는 부류에 속해 있는 유급한 상급생인데다가, 학교 공식 밴드인 ‘이카루스’의 창단 멤버이자 현 보컬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영진에게 맨 뒤 창가 자리는 비어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뭔가 빛바랜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상당히 유명한 애 자리야. 작년 축제 때 밴드 공연 했지? 거기 보컬이지.”

0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그는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은 뒤 의자에 앉더니 바로 엎어져 자버렸다.

“저 얘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흘깃 쳐다봤다. ‘이카루스’가 우리 학교 공식 밴드 이름이라니, 게다가 거기에 가입 권유를 받았다는 사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니까, 그때 진학실에서 선성님께 잔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요즘 너무 안일한 게 아니냐. 고3이라는 자각이 부족해. 너 어디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어, 그 점수 가지고 되겠어? 정신 차려라.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시기야.”

‘엄마가 선생님과 상담한건가.’ 라고 생각했다. 엄만 내 성적이 그대로 인 게 잡다한 생각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다 버리고 일년 동안 죽은 척 공부만 하면 평생 동안 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나는 공부말고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단지 정해진 답을 완벽하게 외우는 것을 평가하는 시험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이런 내 마음가짐이 엄마에게는 잡다한 생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음악실을 지날 때였다. 빗방울이 떨어져 일으키는 파문 같은 피아노곡이 들렸다. 곧 곡이 끝났지만 다시 듣고 싶었다. 음악실 문을열고 들어가려는데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그에게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밴드 가입 권유를 받게 되었다.

“자고 있어?”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는 잠이 덜 깬 듯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올려 보더니 대뜸, ‘누구?’ 라고 입술을 중얼거렸다.

“음악실에서 봤잖아.”

“아아, 그래 우리 밴드에 들어 올거냐?”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하게 초점이 잡힌 그의 검은 눈동자에 오목하게 일그러진 둥근 내 얼굴이 보였다. 새카만 색, 화이트로 지워버리고 싶은 깊은 색깔의 내 눈동자.

“가르쳐 줘.”

“‘프렐류드’ 말하는 거야, 아니면 키보드 말하는 거야? 내가 가르쳐 준다고 해도 ‘프렐류드’는 완벽하게 칠 수 없어. 그리고 키보드는 네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지.”

“그때 들은 곡이 ‘프렐류드’야? 그거라도 가르쳐줘.”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창 밖을 쳐다봤다.

“뭐, 그럼 오늘부터 넌 ‘이카루스’ 소속이다. 앞으로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거야.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그런 경험.”


음악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그는 그 옆의 책장에 꽂혀 있는 검은색 하드커버 파일을 집어 들고 한참 동안 뒤적거렸다. 이내 나에게 보여준 것은 검은 잉크가 군데군데 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악보였다.

“내가 쳤던 곡은 쇼팽의 프렐류드 Op.28-15번,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쇼팽이 꿈에서 마을에 나간 아내와 아이들이 비에 불어난 강에 빠진 것을 보고 깨어나 즉흥으로 쳤다고 하지. 잔잔하게 깔리는 빗방울 같은음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그는 작은악절 하나하나를 짚으며 이건 이거랑 같으니까, 이 부분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악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반음내림표가 네 개나 붙어 있어 조금만 봐도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왜 내가 완벽하게 칠 수 없다는 거야?”

나는 박자가 빠르지 않고, 마지막 부분에 어려워 보이는 부분이 있긴 해도 연습하면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치는 건 간단하지. 그러나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피아니스트가 직업인 이유를

말이야.”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쪽 손은 가슴을, 다른 손은 나에게 뻗었다.

“손이 따라 준다 해도, 감정은 표현해내기 어렵다는 거야.”


#2

그런데 왜 도망쳐야 했던 걸까. 저 곳에서 만질 수 있는데, 돌아가야 한다고 수없이 속으로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온 몸이 젖어버리면 산산이 부서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나를 위협했다.


땀 냄새가 물씬 코끝을 스쳤다. 어둠 속에서 손끝에는 감각이, 귓가에는 키보드와 일렉기타 소리가 맴돌았다. 연주가 멈추자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한 번 더 하자.”

밴드의 리드보컬인 성화가 외치자마자 유인의 강렬한 일렉기타 음이 들렸다. 이어 성화가 노래를 시작했고 나는 키보드를 연주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점점 무뎌졌다. 제대로 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귓가에 키보드 음이 들리지 않는다.

“틀렸잖아.”

성화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자리에 주저앉아 아련해지는 눈가를 비비며 잠을 쫓았다. 어느 샌가· 이마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짜증나게 하지마라, 제대로 해.”

성화의 목소리, 그리고 그 뒤의 유인의 목소리.

“알겠다니까!”

둘의 이야기는 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 멀리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날카로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전화 받으란 말이다. 귀가 먹었냐?!”

성화의 목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잠깐 나갔다가 올게.”

나는 계단 위로 비친 빛을 밟고 올라갔다. 하늘에는 긴 노을이 낮게 깔린 구름 밑을 물들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 거니.”

엄마는 약간 높고 헝클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는 귓가를 맴돌고 있다.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차가운 구슬이 되어 버렸다.

“듣고 있는 거니?”

무게를 이기지 못한 구슬이 귓가를 타고 떨어져 내렸다. 머리를 만들고 꼬리를 늘어뜨린 채 지면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면서도 멈추어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

“네.”

“언제쯤 올 거니?”

그러한 착각은 빗방울이 길가의 풍경을 자기 안에 기억으로 새기기 때문이었다. 막 출발하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는 사람들.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려가는 소녀의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까지 모두 그 안에 있었다.

“곧 가요.”

마지막으로 지면에 닿아 천천히 흩어지는 빗방울을 지켜보았다. 하아, 빗방울이 모두 산산이 부서지며 담고 있던 모든 기억은 깨져 버리는가.

“그래, 무리하지 말고…”

“성화가 빨리 내려오래.”

어머니의 말씀과 유인의 말이 함께 들렸다. 유인은 아직 내가 전화 하고 있는 걸 보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너 설마…….”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폰 배터리를 뺏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유인의 옆을 지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그가 따라왔다.

계단을 내려가 연습실 문손잡이를 잡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케챱을 뿌린 물컹한 젤리가 달라붙는 듯 했다. 놀라 손을 떼며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차갑게 식은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인이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지상으로 통하는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들어 왔다. 아침의 강렬했던 흰빛이 저녁 무렵의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어서 제자리로 가!”

성화가 고함을 치는 모습에 어머니가 겹쳐보였다. 키보드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손가락 끝에서만 느껴졌던 것. 어머니는 이런 아픔을 느끼고 있을까. 다시 느낀 아들에 대한 실망, 분노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감정이겠지. 손끝의 차가운 감각이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려.’

귓가에 일렉기타 음이 들렸다. 동시에 섬세한 선율이 키보드 건반 위를 돌아다니며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야, 너 임마!”

날카로운 성화의 목소리가 지하실의 허공을 울리며 허망하게 내 귀를 채웠다. 그리고 가늘고 약한 빛이 내 옆의 공간을 비췄다. 손가락 사이에서 흩어질 듯 멈춰있는 빛.

“성화 네가 말했지, ‘이카로스’에 대해서.”

나는 나지막하게 말하며 키보드에 한 손을 얹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키보드가 놀랍도록 차가웠기 때문일까.

“정말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건 단지 신화일 뿐이잖아.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성화는 뭐든 다 부서 버리겠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고 나를 쳐다봤다. 아아,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니까!”

입속에서 시리도록 쓴 맛이 느껴졌다.

“그만둔다. 어리석은 짓인데다가 시간 낭비야.”

나는 뒤돌아 섯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자 피 맛이 났다.

“너도 이제 공부나 하지 그래? 또 유급당하면 만년 고3이야.”

닫히는 문 사이로 성화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 이 자식!”

계단을 올라가자 숨이 차올랐다. 목에 뭔가 걸렸다. 한 가득 침을 삼켜도 그대로이다. 뒤에서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3

꿈에서 깨어 침대에 앉았다. 하늘은 곧 비를 내릴 듯 어두웠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스쳐 마음이 편안해 졌다. 어느새 나는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누군가 나를 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경쾌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눈을 비비며 조용한 창 밖의 거리를 쳐다봤다. 하얀 셔츠, 짙은 갈색의 바지를 입고 같은 색깔 넥타이를 매었다. 거울에 부스스한 내 얼굴을 비추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학교 가기 싫어. 자고 싶다고.”

라디오를 끄고 거실로 내려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엄마는 나를 보더니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바빠도 머리 감고 이빨 닦아야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란다.”

“어차피 다 아는 사이라고요.”

투덜거리며 현관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화장실 욕조에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이 곧 뜨거운 물로 변했다.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을 쳐다보자 머리가 쿡쿡 찌르듯 아파 왔다. 머리카락에 물을 조금 묻힌 뒤 비누거품을 만들었다. 눈가에 고인 물방울이 천천히 욕조에 떨어져 부서졌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걸까. 아픔은 머리가 부서져버릴 정도로 심해졌다. 대충 헹구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이마를 꾹꾹 눌렀다. 눈을 감고 화장실을 나왔다. 코끝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어이구, 잘했다, 내 아들. 방금 끓였으니 어서 먹으렴.”

“늦는단 말이에요.”

내가 불평해도 결국 먹게 된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뭐 학교는 제 시간에 도착 할 수 있으리라. 공원에서 영진을 만난 후 뛰어간다면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다. 고개를 들자 엄마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입술 위에 뜨거운 국물을 흘렸다. 혀끝을 스친 액체는 진한 된장 맛을 구석구석에 흩뿌렸다.

“우와, 정말 맛있어요.”

엄마는 그저 빙긋 웃으셨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난 후 가방을 매고 현관문에 섯다.

“다녀오겠습니다.”

엄마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했다. 막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 환청 이였을까, 가슴을 찌르는 비수 같은 목소리가 머리를 감쌌다.

“밴드는 그만두길 잘한 거란다. 공부 열심히 하렴!”

현관문을 나갔다. 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들썩들썩 거리는 책 소리가 났다. 머리 속에서 엄마의 마지막 말이 또렷한 단어들이 되어 부딪쳐 흔들리는 듯한 소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공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를 가로 지르면 학교 교문에 도착한다. 공원 가운데 있는 파란색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영진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오래 기다렸어?”

“아냐, 방금 왔어. 어서 가자. 지각하겠다.”

영진은 샌드위치를 물고 웅얼거렸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고 교복 단추도 몇 개 열려 있었다.

“네 녀석은 여전하구나.”

“2시간 밖에 못 잤어 공부한다고. 난 너와 달라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잖아. 넌 정말 행복한 녀석이야. 그렇게 공부를 잘하니.”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문에 도착했지만 이미 닫혀 있었다. 숨을 고르며 영진을 쳐다봤다.

“죽어버린 인간은 날지 못하지. 흩어진 물방울이 깨져버리듯, 죽어버린 인간은.”

“무슨 말이야,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뜬금없는 영진의 말에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영진은 뭔가에 홀린 듯 교정 뒤로 뛰어 갔다. 뒷문은 닫혀 있었지만, 트럭이 그 옆에 세워져 있었다.

“먼저 간다.”

능숙한 솜씨로 영진은 담을 넘어 사라졌다. 나는 가방을 던져 놓고 조심스레 트럭 위에 올라갔다. 주변을 살피는데 교문 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음이 조급해져 왼손으로 담을 짚고 뛰어 넘었다. 착지하자 두 발목이 충격으로 저렸다.

“아까 무슨 말이야. 어이, 뭐해?!”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봤다. 영진은 뭔가에 놀란 듯 멈춰 서 있었다.

“원영, 영진. 오늘도 지각인가?!”

그 순간 누군가 담을 뛰어 넘어 착지했다. 담 너머에서 선도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오호. 그래. 성화까지. 다 모였구나? 지각생 녀석들.”

성화라는 말이 들리자 뼈 속까지 사 묻힌 듯한 차가움이 엄습하듯 손끝이 저려왔다.

“너였냐.”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목에 걸렸다. 성화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방과 후 잠깐 보자.”

나는 ‘싫어’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계속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 날 이후 성화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머리 속에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키보드 자리는 계속 비워두고 있어. 정말 성화는 이해 할 수 없다니까.”

전에 유인이 말했던 것, 지웠다고 생각한 기억이었다.

“그냥, 옛날 일이 떠올랐을 뿐이야.”

영진은 내 눈을 똑바로 보지 않고 답했다. 나는 땅바닥을 쳐다봤다. 회색 콘크리트 사이로 모래가 뭉쳐 있었다. 모래는 뿌리기는 쉽지만 모으기는 힘들겠지. 이상한 생각이다. 정신이 멍해졌다. 고개를 들자 시계탑의 시계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운동장 세 바퀴를 돌고 들어가라고 했다. 막 두 바퀴를 돌았을 때, 성화와 영진은 먼저 다 돌고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돌고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비가 왔다. 비를 맞자 건물에 들어가기 전 몇 분의 기억이 조용히 증발해버렸다.

‘나는 뭘 원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모든 게 죽어버린 듯 진한 어둠 속에 창백히 비를 맞는 흰색의 학교가 멀리 가냘픈 빛을 내고 있는 장면, 최후의 단말마― 같은 이미지. 계속 같은 생각만 하얀 백지를 빽빽이 메우는 듯 느껴졌다.

건물에 들어가자 레코드판이 찰칵거리며 돌아가는 듯 기억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운동장 구석에 있는 시계탑을 쳐다봤다. 흐릿한 시야에가려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가자 창가 맨 뒷줄에 앉아 바깥을 쳐다보고 있는 성화가 보였다. 나는 그보다 두 칸 앞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포개어놓고 창 밖을 쳐다봤다.

쏴아아 하며 무수히 떨어지는 빗방울. 지면에 닿아 흩어지는 빗방울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걸까. 고요한 지평선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고 반동으로 다시  튕겨 오르는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밴드를 그만 두던 날, 귓가에 맴돌던 빗방울이다.그 순간 두 가지 기억이 머리 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너도 날아오를 준비를 해. ‘이카루스’에서 말이야.”

성화와 첫 만남에서 들었던 말.

“죽어버린 인간은 날지 못하잖아? 흩어진 물방울이 깨져버리듯, 죽어버린 인간은.”

등굣길에 영진에게 들은 말. 서로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인데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축축한 바람이 머리를 스쳤다.  바람은 마음의 빈 곳을 메우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너 성화와….”

영진의 말에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 듯 정신이 멍해졌다. 그 순간 점심시간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으러 가자.”


#4

손을 더 깊이 넣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어깨까지 젖어들자 눈앞에 다가온 빗방울이 선명하게 보였다.


교실을 나서자 밴드를 그만 둘 때의 선명 했던 성화의 목소리와 지독하게 짙었던 어둠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빗방울. 아아, 그랬구나. 귓가에 들리는 빗방울 소리가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거다. 그리고 손가락에 남아 있는 프렐류드가 차갑게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 먼저 먹으러 가. 가볼 곳이 생겼어.”

나는 달렸다. 그 곳에서 더 이상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없애 버려야 한다. 아침에 엄마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도, 이런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내 모습이 들킬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복도 코너를 돌았다. 멀리 음악실이 보였다. 살짝 열린 낡은 갈색 문 너머로 그랜드 피아노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회에서 쓰는 책상 겸 긴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고 사물놀이에 쓰이는 장구가 철제 캐비넛 위에 있었다. 창가로 들어온 빛은 피아노 건반을 휩쓸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이런 모습에 눈물이 흐를 뻔 했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 사이로 잘리듯 보이는 그랜드 피아노가 조각조각 가슴 속에 묻혔다. 없애버린다 해도 지금은 절실히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수면에 고요한 파문을 그리는 빗방울.

의자를 뒤로 밀었다. 끼익 거리는 땅바닥 끄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 속에서 머리 속을 맴돌았다. 열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렸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감각이 부드럽게 휘감았다. 마지막이 되어버릴 연주. 처음 프렐류드를 완주 했을 때, 나는 성화에게 ‘이카루스’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와. 그는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랍 날개로 하늘로 날아올랐지. 너무 높이 날아올라 뜨거운 열기에 밀랍이 녹아 날개가 부서져 추락해버렸어.”

“에? 그럼 죽어버린거잖아.”

“그렇지. 그러나 그는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았어. 땅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유를 손에 얻은 유일한 사람이잖아. 죽음 이전의 최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생명이라는 깃털을 받지. 그리고 우리의 열정에 녹여 ‘이카루스의 날개’를 만드는 거야.”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거야. 우리의 열정을 태양이 녹였을 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는 거야. 아무도 얻지 못한 그런 영원한 자유를. 그래서 밴드 이름이‘이카루스’인거다.”

프렐류드의 조용한 분위기가 나를 피아노라는 악기에 관심을 끌게 했다. 계속 연습해서 눈을 감아도 건반을 짚을 수 있도록 완전히 외워 버렸다. 그러나 나는 성화나 유인처럼 악기 연주에 몰두 할 수 없었다. 프렐류드 외에는 어떤것도 연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밴드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프렐류드는 밴드에 대한 기억을 머리 속에 떠오르게 했다. 지금은 공부에 열정을 느껴야 한다.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젠 끝이다. 그 동안 고마웠어.”

나는 손을 향해서, 그리고 피아노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낮게 ‘성화 너도’ 라는 말을 덧붙였다. 손가락 끝에 찌릿찌릿한 아픔을 남기고 차가움이 사라졌다. 가슴 한 구석이 찡하게 아파왔다. 마치 피아노라는 물이 얼어서 얼음 덩어리가 된 후 주위와 타협하지 못하고 커져버려 주위의 열을 뺏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또 남을 부수며 같이 망가져 버리는 차가운 벽의 상처와도 같이 나의 마음에 상흔을 남겨두지 않았나 싶다.

음악실 문을 닫았다. 영진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뛰어가려 했다. 그러나 문 바로 옆에 누군가 기대어 서 있었다.

“너로군. 저 곡을 저렇게 멋지게 연주하는 건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 보는데.”

유인은 등을 벽에 기대고 길게 뻗은 왼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밥 먹으러 가야 해. 간다.”

“기다려 봐. 할 말이 있어.”

그는 나에게 팸플릿을 건넸다. 나는 받아 든 채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공연한다. 오라는 이야기는 아냐. 단지…. 아니다. 네가 보면 알거야.”

나는 어깨 너머로 손을 흔들고 식당으로 뛰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진이 보였다. 나를 보고 웃는 그에게 미소로 답하고 배식을 받아 옆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보았다.

‘이카루스’라는 밴드 명 밑에 익숙한 곡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짚으며 내려가던 중 마지막 곡에서 손이 멈추었다. 「프렐류드」라고 멋들어지게 영어로 쓰여 있었다. 뒤에 있는 숫자는 Op.28-15번, 빗방울 전주곡 이였다.

“그 곡 나도 알아. 정말 제목이랑 잘 어울린다니까.”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

나는 영진에게 차갑게 답하고 밥을 먹었지만 자꾸 시선이 팸플릿으로 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화가 치밀어 팸플릿을 찢었다. 고개를 들자 막 식당에 들어오고 있던 유인이 보였다.

“너 정말!”

“신경 꺼라.”

나는 유인과 영진을 뒤로 하고 식당을 나갔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둘은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저 둘 아는 사이였어?’ 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5

빠르게 지나가는 빗방울에 떨리는 눈동자가 비췄다. 두려워 도망가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어 뛰어 들어갔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방과 후, 나는 교실에 남아 아이들이 빠져 나가기를 기다렸다. 성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비가 내리는 창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보자고 했어?”

성화는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예의 그 큰 눈동자.

“밴드 들어 와라. 공연 한다.”

“싫어.”

건방진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내 성대를 울리는 음성보다 조금 낮고 건조했다.

“유인에게 다 들었어. 팸플릿도 받았고. 그러니까 싫어.”

성화가 내 앞에 다가 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붉은 뺨이다.

“그래? 알겠다.”

성화는 내 옆을 스쳐 교실을 나갔다. 빈 가슴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열기가 느껴져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운동장을 쳐다봤다. 부슬부슬하게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시계탑이 보였다. 변함없이 움직이는 분침과 초침, 그렇게 딱 부러지게 행동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불가능하겠지. 그렇게 하는 건.’ 이라 되뇌며 복도로 나갔다.

“잠깐 나 좀 봐.”

영진은 점심시간에 내가 찢었던 팸플릿을 들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다.

“유인에게 다 들었어. 왜 거절하는 거야?”

나는 팸플릿을 낚아채며 가늘게 웃었다.

“더 이상 밴드 활동은 하지 않아. 피아노 아니, 키보드 치는 게 질렸거든.”

영진은 정말 불쌍한 녀석을 다 보겠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넌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제일 행복하잖아? 점심시간에 네 뒤를 쫒아 가서 프렐류드를 들었어. 거기에 배어 나온 너의 감정도 느꼈고.”

“그런 건 익숙해졌기 때문이야.”

작은 목소리로 흘리듯 말했다. 영진은 평소 헤헤거리며 멍청하게 웃지만, 종종 이런 예리한 눈매를 가진 표정이 되곤 한다.

“넌 아직 날지 못했잖아. 도망치지 마. ‘이카루스’가 자신만만하게 날았다고 생각해? 열정이 없다고? 죽는 게 겁난다고? 너 뿐만이 아냐. 유인도, 성화도, 그리고 나도 모두 두려워하고 있어. 도망치고 싶기도 해. 그렇지만 말이야. 날아올라 신을 만지고 싶다는 그 희열감이, 아니 떨어지면서 얻는 최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이카루스’는 날았어. 우리도 똑같아. 두렵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을 아니까 하는 거다.”

영진은 애초에 성화를 알고 있었다. 그가 ‘이카루스’의 보컬이라는 것도. 또, 유인과도 아는 사이인 듯 했다. 비어 있던 ‘이카루스’의 키보드 자리. 그리고 성화와 영진의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던 말까지. 난 깨닫았다.

“너, 설마 ‘이카루스’의 키보드 였던거야?”

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미쳤었지. 중학교 때부터 계속 피아노를 쳤어.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성화를 만나 밴드 활동을 하며 많은 것을 얻었어. 많은 것을 잃기도 했지만 말이야. 그런 경험에서 난 이런 결론을 내렸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는. 너도 알잖아. 뭐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댈 수 있어. 그렇지만 그렇게 망설이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 너는 내가 공부를 소홀히 해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건 아냐, 하나에 미친다는 건, 다른 것에서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때, 피아노에 미쳤으니까, 지금 공부에도 미칠 수 있듯이.”

손끝에 차가운 감각이 다시 온 몸을 휘감았다. 너무 좋았던 밴드의 일과, 키보드, 그리고 프렐류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를 짓누르던 아픔이 완전히 사라지고 심장을 부서뜨릴 것 같은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휩쓸었다.

“가서 연주해라. 공부라는 변명으로 너를 속이지 마. 네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 누구도 너를 대신할 수 없어.”


#6

온 몸이 젖고나서 나는 깨닫았다. 빗방울이 떨어져 지면에 닿아 흩어져도 새겨진 기억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의 끝에서 바라본 무대의 전경은 오색 조명에 빛나고 있었다. 오목한 무대의 끝에서 갈라진 끈이 경계를 만들고 아무렇게나 놓인 전선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유인과 성화는 무대에 나와 악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나는 열려 있는 문 사이로 얇은 막을 보았다. 나와 ‘이카루스’ 사이에 가로막힌 막은 마치 옅은 물안개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손가락 끝에 그 느낌이 느껴지는 데서 멈추었다.

‘이런 막에 가로 막혀 나는 좌절 했던 거야?’

뻗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다. 밴드에서 나와 도망쳤으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 나를 거짓말로 속여 차가운 아픔이 온 몸을 휘감게 했다. 날개를 달았으면서 날기가 두려워 걸어 다녔던 나. 시계탑의 기계적인 움직임처럼 감정을 버리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건 빗방울이 모든 기억을 품고 파문을 그리며 흩어지기 때문이다.

‘비상(飛翔).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자.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거야. 난 내 마음에 충실하고 싶어. 지금의 일분, 일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잖아. 그렇지? 원영.’

나는 멈칫했다가 도약하듯 뛰어 들어갔다.


#7

잠옷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라디오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창 밖을 쳐다보니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가늘게 흩어진 빛에 수놓인 하늘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고 싱긋 웃었다. 방문을 열자 코 끝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스쳤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앞에 두고 뒤를 돌아봤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 키보드가 세워져 있었다.



수상 소감


'빗방울' 프렐류드는 제가 처음으로 연주한 곡입니다. 반복되는 부분이 있어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만, 순간순간의 속도, 미묘한 터치 그리고 적절한 페달을 고려해서 감정을 잘 살려야 하는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공부, 글 그리고 피아노까지 기본이 되는 말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익히면서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을 투영하는 '나'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후기

2년이 지난 지금 회상해보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안 되는 글을 쓰느라 몇 달을 고치고 또 고쳤던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도록 강요하고 “잘 썼네!”라는 말을 듣기 위해 그 얼마나 괴롭게 했던가. 그것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내려갈 수 없었다. 읽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쓴 건가.’ 라고 생각했다. 문체랄 것도 없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가. 백분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읽고 싶지 않은 소설에 속할 거라고 생각한다. 겉만 번드르 하고 어디에도 쓸데도 없는 소설.

그럴지라도 나의 고등학교 삼 학년의 추억이 담겨 있다. 소중한 나의 기억이라는 뜻이지. 그때에만 쓸 수 있는 언어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열심히 고민하는 유년 시절의 나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다. 사랑스러운 나의 유년 시절이 이 글 속에 녹아 있다. 어떤가, 당신에게는 유년 시절을 그대로 기록한 것들이 있는가?

이 글을 처음부터 읽었던지, 중간만 읽었던지 혹은 후기만 읽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런 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라!